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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수 | [박성수 칼럼] 사모펀드는 아무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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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성수 작성일19-09-06 06:21 조회1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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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위선적인 삶이 도마에 오른 지도 수 일이 지났다. 자녀의 교육기관 진학 과정이 가장 큰 논란거리이지만 그 못지않은 것은 사모펀드였다. 코링크PE가 운용하는 블루코어밸류업1호라는 사모펀드 말이다.

대중이 조국에게 분노하는 것은 말 그대로 사모펀드가 자본시장의 정점, 정수에 위치해있기 때문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사회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주의에 입각한 발언을 펼쳐왔으나 실상은 자본주의에 가장 잘 적응해온 미국의 버니 샌더스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었다.

혹자가 이 펀드에 조국과 조국의 자녀가 자금을 출자한 점을 거론하며, 이 과정에서 불법 및 탈법행위가 없었는지 의심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이와 관련된 검찰의 수사 결과가 발표되지 않았으므로 설왕설래 할 필요는 없다. 의혹은 무성하고 사실관계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모펀드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응할 필요는 없다. 마치 사모펀드가 아주 손쉽게 대중의 고혈을 챙기는 자본가의 수단인 것 마냥 장식되는 것은 오류이다.

우리나라에서 사모펀드는 자본시장법에 기초한다. 펀드는 통상 공모와 사모로 나뉘는데, 구분 기준은 다름 아닌 가입을 권유하는 청약권유자와 투자자의 수이다. 만약 청약권유자와 투자자의 수가 49인 이하라면 사모펀드이고, 50명 이상일 경우 공모펀드로 구분한다. 소수의 투자자가 결집한 사모펀드는 전문운용사가 투자자 공통의 투자전략을 바탕으로 다양한 투자 방식을 구성하기에 유용하다. 대규모 자금력을 바탕으로 하는 공모펀드가 골리앗과 같은 힘을 발휘한다면, 사모펀드는 다윗의 민첩함을 바탕으로 작동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과정 자체는 불법이나 탈법행위가 아니다. 사모펀드는 공격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특정한 기업이 창업되고 고도로 성장하고, 추후에는 사양 및 회수되는 시장경제의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이제는 가장 진부한 말이 되어버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며, 급속도로 산업구조가 다변화되는 가운데에 금융이 밑바탕이 되지 못한다면 변화와 성장은 없다. 기하급수적인 세포분열의 현장과 같은 기업의 탄생과정에서, 둔감한 공적자본보다는 신속하게 자금이 유입될 수 있는 민간자본의 비중이 커져야 하고, 그 민간자본의 전형이 사모펀드이다. 이른바 혁신기업이 탄생하고 성장하는 위험한 줄타기에는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자본이 유입될 수가 없다.

사모펀드의 성장이 국내 금융시장의 규모와 효율성을 높여왔음은 명백한 사실이며, 그로 말미암은 실물경제의 효과도 부인하기 어렵다. 사모펀드는 진흙 속의 진주와 같은 신생기업의 말단까지 속속들이 자본을 공급하여, 기업의 성장과 고용창출, 저실업을 실현시키는 기제 중 하나이다.

언제까지 순진하게 연기금에 납부하고, 정권의 하수인들이 마음대로 국내 금융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꼴을 볼 수만은 없다. 세계 여타의 선진국이 적극적이며 공격적인 해외 투자를 장려한 덕분에 든든한 국부를 창출하고 있다. 소위 유니콘 기업이라고 불리는 기업 가치가 1조원 이상에 육박하는 기업들의 성장 과정에서 사모펀드가 빠지지 않았던 경우가 얼마나 있었던가. 혹자는 이것이 정보를 먼저 획득한 대가이며 그 정보 획득 과정이 치사하지 않느냐 반문하지만, 그와 관계없이 사모펀드를 없애게 되면 그렇게 고도화된 정보 융통의 인센티브가 꺾이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겠다는 모험심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신대륙 발견에 따른 막대한 부였던 것처럼, 정보가 정확하고 빠르게 공유되는 이유에는 돈이 있다.

유교에 찌들어버린 이 땅에는 1998년이 되어서야 일반적인 사모펀드개념이 도입되었고, 통상적인 국제 인수합병을 포괄하는 사모펀드제도는 2004년에 들여와졌다. 조지 소로스를 비롯한 국제 투자자들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헤지펀드’의 개념은 2008년 국제금융위기가 발발하고 그 이듬해인 2009년이 되어서야 마련되었다. 그나마도 선진국과 동일한 수준이 아닌 ‘한국형 헤지펀드’라는 진창으로 만들어진 것이 근래에 들어서야 규제가 개선되어 볼품을 갖추었다. 조국은 용서할 수 없지만 사모펀드를 금기시할 수는 없다.

정책 당국은 일찍부터 사모펀드의 중요성을 인식해 1998년 일반사모펀드를 도입한 이래 2004년 해외 자본의 국내 기업 인수에 대응해 사모펀드 제도를 도입했다. 2009년에는 다양한 맞춤형 투자 수단 제공을 위해 한국형 헤지펀드를 도입했다. 2015년과 2019년에는 일련의 사모펀드 규제 개선을 발표하는 등 정권에 관계없이 사모펀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일관성 있는 정책적 노력을 경주해왔다. 사모펀드의 꽃은커녕 꽃봉우리가 이제 막 트고 있는 지금이다. 소의 뿔을 뽑으려다 소를 잡을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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